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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tory/review

초코파이에 관한 추억 (생일케이크, 군대, 학창시절, 캄보디아... 정타임)

1990년 방학 아닌 어느 날...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산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당시 고등학생들의 대부분은 늘 배가 고팠던 걸로 기억이 듭니다.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못먹고 배고픈 시절은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배가 고팠지요.
요즘은 급식을 통해서 청소년기 왕성한 대사활동의 보상으로 대체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당시는 '도시락'이라는 걸 점심시간 혹은 쉬는 시간에 까서(?) 먹게 됩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점심과 저녁 혹은 아침식사까지 학교에서 해결하는 자식을 위해서 새벽부터 어머니의 을 꾹꾹 눌러서 도시락을 싸셨지요. 
아들의 아침 잠을 존중해주신 어머니!!!!
아들의 아침끼니까지 함께 싸주시다 보니 양철도시락은 일말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꽉 들어찬 최고의 밥알 밀도를 자랑했지요.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갓지은 밥을 양철도시락에 눌러 채우는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 
고맙습니다. 어머니



아침보충수업 전 (그 당시는 아침에도 보충수업을 했지요) 앞 뒤자리 친구들과 단 5분에 아침밥을 해결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각종 반찬 냄새들이 교실공기를 오염시켰을 것이고, 
아침보충수업 들어오신 선생님들은 그 오염을 느꼈을진데 
"지난 시간 어디까지 했더라~~~~음" 눈감아 주셨지요...... 좀 찡해지는 군요. 
생님들도 아침식사를 못하시고 어린 양들의 보충수업을 위해 들어오셨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어느 순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아침 보충수업 교탁에 초코파이와 커피를 올리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래도 다정다감한 반장의 소행으로 기억이 되는데, 우리반의 초코파이와 커피가 선생님들의 아침식사에 꽤나 공헌을 했을 겁니다. 좋아라 하셨거든요. 
그 반에 아침 보충 수업을 가면 꼭 초코파이가 있더라.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을...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는지... 고맙습니다. 선생님



1994년 여름 훈련소...

꽃피는 춘삼월과 선선한 추시월을 놔두고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국가의 부름을 받았지요. 
수십년만에 찾아왔다는 더위에 무척이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 첨만난 전우들과 어깨를 걸고 이리구르고 저리구르고 모래도 먹고 돌도 먹고...
배식받은 밥은 마하 2 정도의 속도로 먹어치우고 군가한번 부르고 나면 배는 또 홀쪽해지지요.
훌륭하게 각이 잡힌 조교들이 무섭기도 하지만 왠지 멋있어 보이더군요. 군대는 각... 조교들의 각... 장난이 아니지요. 
참 먹고 싶었던 것이 많더군요. 자장면, 초코파이 이 두가지는 어찌나 먹고 싶던지 꿈속에서도 보이더군요. 
훈련소 나가면 배터지게 먹겠다고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전우랑 탄식을 공유했지요. 

훈련소 4주차 어느 일요일...
아.... 꿈에도 그리던 초코파이가 눈앞에...
교회 위문단에서 준비한 초코파이와 야쿠르트에 다들 어쩔줄 몰라했지요. 
하나씩만 주는 거라 배터지게 먹지는 못했지만 그 맛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맛은 그대로 일텐데, 그 사람은 변했군요.
그 때 그 전우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보람찬 하루일'을 하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2004년 건기(건조한 기후)의 아시아 한켠

앙코르와트.. 킬링필드..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하던 화려한 문화유산과 근대 이데올로기의 어두웠던 상처를 함께 가지고 있는 나라 캄보디아
방문 당시 세계 130위권정도 경제규모.. 경제자립구조를 가지지 못하여 식량, 의료 등 많은 지원을 받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여느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국민들이 자신의 생활에 만족을 하는 낙천적인 나라이지요. 그 캄보디아에서 1년 가까이 머물게 되었지요. NGO들과 더불어 함께 의료봉사 등을 다니다 보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멍하게 서있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기본적인 의료, 기본적인 생계... 우리들이 기본적이라고 일컫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인데요. 힘들어 보이지만 늘 웃음을 잊지 않던 그들에게 제가 가진 빵하나를 건네주는 것과 그들이 주는 리액션에서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뭔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나는 작은 초코파이 하나와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진심어린 을 나누었습니다.

 
2010년 춘삼월 어느 날...우리가 하나되는 시간

참... 이 나이쯤 들고 나면 생일 찾아먹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미역국은 그렇다치고 케이크의 촛불을 끄면서 소원빌기도 좀 머쓱하지요. 
사실 소원은 늘 매일 항상 언제나 빌고 있는데 말이지요. 
건강, 재산, 가족....

한 여자의 바깥사람이라는 역할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이 조금 외롭구나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지요. 
'내 아버지가 그러셨겠구나' 
벌써.. 감히.. 느껴봅니다... 

기러기아빠여서 그런지 이런 생일날은 더 심란하고 쓸쓸하고 섭섭해 집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니 보고싶은게 덜 하겠다 싶더니 조그만 화면으로 채울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체온을 느끼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요. 

"아빠...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몰라.... 무슨 날인데???"
"아빠 생일이잖아~~~케이크 받으세요... 내가 샀지롱"

아홉살짜리 딸아이가 쌈지돈으로 산 ..... 아빠의 생일케이크... 영상통화로 넘어오는 따뜻한 느낌... 
초코파이로 만든 케이크...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이 저렴하지만 감동적인 케이크가 아직.... 대물림을 하고 있다니...

"아빠... 축하해~~~"
"고마워........음음" 목이 약간 칼칼해 집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봅니다. 
'다음 내 생일 즈음에는 애한테 용돈을 많이 주던지 해야 겠다. 생크림케이크.......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