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장·김치 등 전통 먹거리까지 점령
옌볜 아줌마 없이는 식당운영도 못할 판
“갈비2인분 말하셨습니까?~” 지난 10월 24일 서울 안암동의 한 갈빗집. 겉보기에는 마냥 평범한 식당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짙은 옌볜 사투리를 듣고는 아줌마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옌볜이라고 했다. 이런 풍경은 한·중 수교 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8 월 말까지
한국에 취업 중인 중국동포(조선족) 수는 9만4305명. 이 중
음식업계 종사자가 2만9663명으로 전체의 31.4%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식당에서든 조선족 동포
아주머니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선족 동포를 고용하는 이유는 한국인 종업원을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 이 틈을 노려 전문 브로커가 생기고 조선족 동포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직업 소개소가 생겼으며 이제는
서울시내 절반 이상의 식당이 1명 이상의 조선족 동포를 고용하고 있을 만큼 보편화됐다. 바꿔 말하면 조선족 동포 없이는 식당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수교한 지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적 교류의 증가이다. 수교 첫해 13만명이던 한국과 중국 간 왕래자 수는 2006년 482만명으로 37배나
증가해 이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현재 매주 804 편의 항공편이 한국의 6개 도시와 중국의 30여개 도시를 오가고 있다. 하루 평균 1만1000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한다. 체류자 수도 급증했다. 최근에
한국은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열었지만 그 중 중국 국적이 44만명으로
무려 절반에 가깝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유학 중이거나 친지를 방문 중인 사람도 있고 내국인의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중국어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증가해 인적 교류뿐 아니라 교육 교류도 활발하다. 조선족 동포 최려(24)씨는 어렸을 때부터 베이징에서 생활해 한국 문화를 거의 접하지 못했다.
“조선족이지만 옌볜에서 생활하지 않아서 한국어는 거의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고 한국어도 본격적으로 배울 겸 한국 대학으로 가라고 권하셨습니다.” 고민 끝에 최씨는 여행 산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양대 관광학부
05학번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중국에서 유학 온 조선족 동포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중국 관광객이 급증한 요즘, 면세점 등 관광 관련 업체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인기다. 이렇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인은 전체 외국인 유학생
3만2000여명 중 60%인 2만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 학위과정 중인 900여명의 전체 외국인 학생 중 중국인이 523명으로 압도적이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며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
반대로 몇 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중국으로 유학 간 한국 학생은 5만7000여명으로 중국 전체 유학생인 16만명의 36%에 이르며 1만8000여명으로 2위인 일본의 3배가
넘는다.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초·중·고 중국 조기 유학생 수는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수를
합하면 8만명에 가까운 학생이 중국에 유학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한
중국산 농수산물은 한·중 수교 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하는 분야의 하나다. 15년
동안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식품 안전성을 지적하는 ‘중국산 농수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1992년 1인분에 3000원이던 된장찌개가
15년이 지난 지금 5000원을 유지하면서 서민의 뱃속을 달래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말만 들어도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중국산 덕분이다. 찌개에 들어가는 멸치와 해물은 물론 쌀, 대파, 양파, 마늘, 당근 등은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중국산 당근의 경우 가격과 품질을
인정 받아 가락시장 진출 2년 만에 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 이렇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중국산 공세는 농수산물을 넘어 가공식품으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산 수입식품 1위는 물론 김치지만 젓갈이나 장류 등의 수입량도 상당한 것을 보면 전통 영역이라고 여기던 우리의 식탁 구석구석까지
중국산이 얼마나 빠르게 침투했는지 알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수입식품팀의
중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국은 서해안 시대가 활짝 열렸다. 한·중 수교 이전 중심축이던 경부 벨트의 비중이 낮아지고 서해안 벨트가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천이 좋은 사례다. 요즘 인천 세관에는 하루 3000여개의 컨테이너가 들어오는데 그
중 90%가 중국에서 온다고 한다. 중국으로 가는 관문 격인
인천은 급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인천 인구는 1995년부터 2007년 6월 말까지 28만명
정도 증가해 총 268만6022명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동안 25만명이 감소한 부산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며 제2의 도시 자리를
넘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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