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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자리잡은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9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나라이기도 하다. 오늘의 중국은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50여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으므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문화를 보유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중국민족의 뿌리인 한족은 그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훌륭한 음악문화를 형성하였고, 그러한 중국의 음악문화는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 등 이웃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당나라(618-907) 때 일본에 전해준 도가쿠(唐樂 ; Togaku)나 송나라(960-1279)때 우리 나라 고려에 보낸 대성아악과 당악은 동양음악사에서 이웃 나라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중국음악의 실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음악의 역사적 발달 과정을 개관적으로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네 시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시대는 기원전 20세기 이전부터 기원 후 4세기까지 한족의 형성과 함께 중국음악의 뿌리를 이룬 시대이고, 둘째 시대는 남북조시대가 시작되는 4세기부터 10세기 당나라가 망한 6세기 동안에 인도 및 중앙아시아의 음악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시대이기도 하다. 송나라이후 청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의 셋째시대는 한족의 음악문화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한 시기이고, 금세기 초부터는 중화민국의 탄생과 함께 국민음악의 수립을 위해서 애쓰고 있는 시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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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세기 무렵에 형성된 상(商)나라와 기원전 12세기에 세운 주(周)나라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상고시대의 음악문화는 어떠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청동으로 만든 종(鍾)이나 돌로 만든 경(磬) 같은 고고학자료에 의거하여 그러한 악기들이 제례의식의 음악과 관련되었을 것 같다. 중국 고대현악기의 하나인 금(七絃琴)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대의 일이다. 중국음악에 관한 구체적인 문헌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가 춘추전국시대(B.C.770-B.C.221)인데, 『관자』와 『시경』이 그 대표적인 문헌이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이 지은<관자>에 의하면, 궁·상·각·치·우 이상의 오성 및 삼분손익법에 의한 12율려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으로 보아서, 중국음악 이론은 기원전에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공자가 편찬했다고 하는 아(雅)·송(頌)으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므로, 중국 고대의 노래가 <시경>을 통해여 대략 어떠했으리라고 짐작되고 있다. 공자의 음악사상에 의거하여 이 당시에 음악을 교육에 사용하였으며, 또 주나라의 아악이 체계적으로 정비되기도 하였다.
진시황(B.C 247-B.C210)이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중국대륙을 통일하녀 중악집권적 고대국가를 건설했지만, 그는 주나라의 아악을 폐지하는 비문화적인 정책을 폈다. 그러나 곧 한나라(B.C220-219A.D)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고대국가의 체계를 갖추게 되자, 아악의 정비가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웃나라와의 문화 교류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한나라의 무제(B.C 159-B.C.87)가 흉노(匈奴)족과 남쪽 지방 화남의 여러 종족들을 평정하고 서역과 문화교류의 길을 트게 됨으로써, 비파·공후·호금(胡琴)·호적(胡笛)등의 서역악기 및 서역의 악극이 최초로 한나라에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궁중음악의 연주와 의례 행사를 전담하는 대악서가 중악정부 기관의 하나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종묘제례악과 고취악이 성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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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를 거친 이후 남북조시대로부터 수나라가 다시 중국대륙을 통일했던 6세기 말까지의 기간 동안에 남조는 중국의 전통아악과 속악을 전승하여 발전시켰으며, 북조는 인도음악과 중앙아시아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차츰 다채로운 국제적 색채의 음악문하를 형성하게 되었다. 수나라(581-619)가 중국대륙의 통일 직후에 구부기(九部伎)라는 외국의 음악연주단을 궁중에 머무르게 하였다. 수의 구부기는 중국의 속악인 청상악(淸商樂)·인도음악의 천축기(天竺伎)·사마르칸트의 강국기(康國伎)·카슈가르의 소륵기·북하라의 안국기·고구려의 고려기(高麗伎)·중국 하서지방의 서량기(西 伎)·진(晋)나라의 가면기였던 문강기(文康伎)로 구성되었다.
당나라(681-907) 태종의 정관(627-647) 때 수의 구부기 중에서 문강기 대신에 중악아시아 투르판의 고창기(高昌伎)와 중국의 연악기를 첨가하여 십부기가 설립되었다. 이처럼 고구려의 음악이 한족 중심의 중국음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됨으로써 국제음악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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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멸망 이후 오대(五代)를 거쳐 송(960-1279)에 이르러서 진양은 송의 휘종때 그의 <악서>에 당의 음악을 아악. 속악. 호악으로 나누어 일단 정리하였다. 한편 송의 음악이론가 채원정은 당대 및 송대 초의 음악이론을 정리하여<율려신서>를 펴냈는데 그 이론서에 12율려와 60조의 이론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송대 궁중의 아악과 속악이외 백성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노래로 엮은 설창과 극음악인 희극이 성행하였다. 설창의 연주형태는 지방에 따라서 공연양식에 의하여 구분되었는데, 북쪽지방에서는 북 반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고사가 널리 퍼졌고 남쪽지방에서는 비파의 반주로 이야기하는 탄사가 유행하였다.
몽고족들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원나라(1280-1368)시대의 음악이론은 마단림의 <문헌통고>중의 악고에 정리되었다. 송대의 음악 문화 중에서 희극 계통의 극음악은 원나라에서도 계속 발전되었는데, 송나라 희극의 영향 아래서 원곡과 잡극이라는 극음악이 여러 지방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남부지방이 원곡은 5음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반주악기로 횡적이 주로 사용되는 반면에, 북쪽지방에서는 7음계의 음악으로 연주되었고 반주악기로는 호금 같은 현악기라 주로 사용되었다. 중국음악이 전통적인 5음계 이외 수나라 이후 차츰 많이 사용되었던 7음계가 본격적으로 쓰인 시기가 바로 원나라시대이기도 하다.
명나라(1368-1644) 시대에 이르러 원의 극음악은 더욱 성행하여 양식적으로 많이 세련된 곤곡으로 발전하였으며 명의 곤곡은 후에 북경오페라로 알려진 경극의 모체로 발전되었다. 명의 곤곡에 사용된 반주악기로 삼현. 호금. 적자. 월금 같은 현악기들이 포함되었고, 또 나( ). 북 등의 타악기도 사용되었다. 명의 음악이론가인 주재육은 1584년에 12평균율을 창안하였으며, 그의 평균율이론은 서양의 평균율보다 반세기 가량이나 앞선 것으로서, 세계음악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나라(1644-1911)는 만주족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였지만, 아악의 부흥을 대대적으로 꾀하였고, 한편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사용하는 악기들을 많이 수용함으로써 당나라 이후 서아시아의 중앙아시아계 악기들을 다시 들여오기도 했다. 그리고 명의 곤곡은 청나라에서도 널리 유행되었고, 그 결과로 청의 극음악인 경극(京劇)으로 발전되었다. 명의 말기부터 카톨릭 신부에 의해서 중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서양음악은 청대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서양음악이 이론이 강희(康熙 : 1662-1722) 황제가 손수 편찬한 <율려정의>(律呂正義)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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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신해(辛亥) 혁명으로 인하여 중화민국이 탄생하자 민족주의 음악이 강조되었으며, 그 결과로 민간음악의 육성에 역점을 두었고 전통악기의 개량작업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음악교육이 폭넓게 보급되었다. 한편, 중국의 정부가 사회주의로 전환되자 고대 중국음악이나, 반주로 사용되었던 전통악기들은 금지되기도 하였다. 여기까지 중국의 음악사를 대략 정리해보았다. 중국음악의 역사를 정리하는 중에 우리 나라 전통음악에 중국음악이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악기들도 서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바로 우리 나라에 들어 온 경로도 알게되었다. 가야금을 전공한 나한테는 많은 도움이 된 숙제였던 같다. 또 수업시간에 경극을 보여 준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곤곡 즉 "경극"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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