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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tory

눈 시(詩)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에 많은 폭설이 내리는데요...

올해는 기록적인..... 기록들이 자주 등장을 합니다. 

얼마전 강릉에 갔을때도 눈이 많이와서 영동고속도로에서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음...

적당한 눈은 운치도 있고 즐겁기도 한데....

기록적..... 이 된다면 여러모로 손실이 많아지네요...


눈에 관련된 시 몇 수 올려봅니다. 이 상황에 시가 웬 말이냐 싶기도 하네요...

자...

영동 주민들 힘내시죠~~~



1===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2===눈길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3===설야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의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4===눈 내리는 날

- 류시호

 

높새 바람 지나 간 후

하늘이 무너지며

경부선 기차 기다리는

서울역 KTX휴게실 창밖

부끄러운 속 옷 보이듯

하얀 옷 입은 소녀가 다가오니

눈을 밟고 떠나고 싶다.

 

낙엽을 밟으며

세월 가는 게 서러워

목마름 달래려

수락산 오르던 것이 어제 같았는데

계절이 성큼

함박눈으로 차창을 가득 메우니

눈을 밟고 떠나고 싶다.

 

세월에 일그러진 내 마음

하얀 눈으로

마디마디 스며든 악취 씻어내고

가을배추, 시래기 된장국

고향집 노모 생각에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시나브로 되어

눈을 밟고 떠나고 싶다.

(삼보초등학교 교사 류시호)


5===임진각 기차역 


-김영재 

  

임진각 기차역에 어둡도록 내리는 눈

슬픔 없이 잠이 들 사랑 찾아 날린다

오래된 먹물을 풀어 그리는 그림처럼

빈들에 눈이 내려 땅과 하늘 한몸이다

너와 내가 밟는 발자국도 하나이다


6===눈 내리는 저녁 숲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이게 누구 숲인지 나는 알겠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 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7=== 눈 오는 지도(地圖)

-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歷史)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8===눈 쌓인 간이역에서


-淸夏 김철기-


삶의 간이역엔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습니다

푸른 채소가 꿈꾸던 들녘

하얀 서리에 절여진 나무 잎새

하얀 눈이 내린 들판

아직 떠나지 못하고 바람으로 맴돌아 다닙니다,


바람이 불듯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에 달린 씨앗들이 마냥 여물어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내리는

내 가슴에 떨어지는

하이얀 눈송이들

저멀리 지평선 끝으로부터

하늘 꼭대기까지 오르는 작은동네

길가 간이역에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습니다


수액이 없는 겨울 숲이 되기까지

빛 고운 날들을 가슴에 담고

그대 기다리는 동안

기적소리만 드리우고

눈밭에 남긴 발자국 하나, 둘,셋,

세월을 뒤로하고

그대 탄 기차를 난 기다고 있겠습니다,


9===詩

-최하림

  눈이 지천으로 오는 밤에 시를 써야지

  머리를 눈에 박고 써야지

  눈 속을 걸어가는 사내 몇

  불을 찾는 사내 몇

  겨울까마귀 몇

  죽은 자들로 그런 밤엔 불을 찾자

  몇날이고 몇밤이고 언덕을 넘겠지 그들의 목소리가

  벌판을 헤매겠지. 그들의 불을 찾으러? 꿈꾸는 불? 그 불 속에

  밤차가 달리고 겨울까마귀들이 공중을 떠돌겠지

  ―겨울까마귀가 중부 지방엔 없어요, 여보.

  중부지방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나는 그 살도 뼈다귀도 안다 바람이 그들 소리로

  하늘을 울리는 걸 안다 당신도 그 소리를 알았으면 좋겠어

  아이들도 이웃도 그 나라의 바다쪽으로

  검은 머리를 빗겨내리며

  붉은 불빛 속에서 마음을 드러내고

  어머님이 나를 보시듯, 그래 어머님이……

 

  오오 떠오르는 어머님이여

  그날 저녁도 우리는 어둔 거리를 헤맸습니다.

  세종로 우체국 옆 담뱃가게에서 솔을 한갑 사고, 거스름돈을 받고, 어느 술집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면서 거리 끝까지 걸어갔댔습니다.

 

10===눈  


-황미나 


눈은 죽은 자의 눈물이라


죽은 자는 이렇게 말없이


돌아 올 수 없는 이승의 한을


얼어 붙은 눈물로 덮어 버리는 거야


11=== 눈오는 날엔

-서정윤 

 

눈 오는 날에

아이들이 지나간 운동장에 서면

나뭇가지에 얹히지도 못한 눈들이

더러는 다시 하늘로 가고

더러는 내 발에 밟히고 있다.

날으는 눈에 기대를 걸어보아도, 결국

어디에선가 한방울 눈물로서

누군가의 가슴에

인생의 허전함을 심어주겠지만

우리들이 우리들의 외로움을

불편해 할 쯤이면

멀리서 반가운 친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날개라도, 눈처럼 연약한

날개라도 가지고 태어났었다면

우연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남을 위해

녹아지며 날아보리라만

누군가의 머리 속에 남는다는 것

오래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한갓 인간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눈물로 알게 되리라.


어디 다른 길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표정을 고집함은

그리 오래지 않을 나의 삶을

보다 <나>답게 살고 싶음이고

마지막에 한번쯤 돌아보고 싶음이다.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나에게 <나>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것만큼

그도 나를 아쉬워할 것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으며 살아야 하고

분노하여야 할 곳에서는

눈물로 흥분하여야겠지만

나조차 용서할 수 없는 알량한

양면성이 더욱 비참해진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조차

허상일 수 있고

눈물로 녹아 없어질 수 있는

진실일 수 있다.


누구나 쓰고 있는 자신의 탈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 갈 즈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뿐이다.

하늘 가득 흩어지는 얼굴.

눈이 내리면 만나보리라

마지막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용기와

웃으며 이길 수 있는 가슴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눈오는 날엔.

헤어짐도 만남처럼 가상이라면

내 속의 그 누구라도 불러보고 싶다.

눈이 내리면 만나보리라

눈이 그치면,

눈이 그치면 만나보리라.  


12===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13===눈사람

- 권혁웅

눈사람은 온몸이 가슴이다


큰 가슴 위에 작은 가슴을 얹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토록 빨리 녹는 것이다


흔적도 안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