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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빌 게이츠, 류촨즈회장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뜻밖이었다. 그가 입은 청색 재킷의 오른쪽 옷 소매 끝은 눈에 띌 정도로 닳아 있었다.

그 가 누구인가? 한국의 삼성전자 격인 중국 최대 민영기업 레노버(Lenovo·聯想)의 창업자이다. '중국의 빌 게이츠'라 할 수 있는 류촨즈(柳傳志·64) 레전드홀딩스(레노버의 모기업) 회장이다. 지난 2월 29일 베이징 레전드홀딩스 본사 A동 10층 회장실. 그는 노타이에 콤비 차림이었다. 그는 활짝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우선 해진 옷을 입는 이유부터 궁금했다. "양복은 보통 10년 이상씩 입어요. 제가 검소해서 일부러 아끼는 것은 아니고요. 입는 데 신경을 안 써서 그래요. 솔직히 돈 쓰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죠. 어떤 옷이 명품인지도 모르고, 명품 브랜드는 들어도 잘 기억을 못하죠."

중 국인들에게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류촨즈 회장이나 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그룹 회장 두 사람을 꼽을 것이다. 미국 포천(Fortune)에 따르면 류촨즈 회장이 창업한 PC 회사 레노버는 2006년 146억달러(약 14조원)의 매출을 올려 민영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국유기업을 포함한 순위로는 레노버가 중국 11위이다.)

그는 카리스마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자가 받은 첫 인상은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였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그는 마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또 하나 인상은 논리 정연하다는 점. 질문을 하면 "첫째, 둘째" 하면서 차근 차근 풀어나갔다.

중국인들이 류촨즈 회장에 특별히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17억5000만 달러에 미국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해 세계의 화제가 됐다. 다윗이 골리앗을 품은 격이고, 한국으로 치면 용산전자상가의 조립 PC 회사 사장이 미국 최고의 컴퓨터 기업을 사들인 격이다. 레노버의 본사는 미국에 있고 CEO도 미국인이다. 연간 2022만대의 PC를 생산하는 세계 3대 PC 메이커이며, 한국을 비롯한 60여 개국에 약 2만50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세계로 도약하는 중국의 힘을 상징하는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늘 마음 속에 '천외유천(天外有天)'이란 중국 속담을 새기고 다닌다고 했다.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 말로 하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쯤 된다. "제 성격에는 자만(自慢)의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우쭐해지기 쉬운 성격이죠. 그래서 늘 자만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일깨우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가 끝없이 기업을 확장하고 부(富)를 늘려가는 데만 몰두했다면, 그는 결코 존경받는 기업가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일찍부터 나눔의 경영을 실천해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레전드홀딩스는 레노버의 지주회사로 주식의 46%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레전드홀딩스 주식은 2%에 지나지 않는다. 65%는 그의 창업 당시 자금을 대주었던 중국과학원이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임직원이 보유하고 있다. 그는 중국 최초로 스톡옵션(1989년)과 종업원지주제(1993년)를 잇달아 도입해 중국 기업에 소유권 개혁 물결을 일으켰다.

그는 돈과 부(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물질적 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뀌네요. 10여년 전에는 내가 탄 차가 좋을수록, 내 집이 클수록 사람들이 나를 존경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한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창 밖으로 옛 동료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정신적인 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즐거운 일은 동료들이 얻어야 할 것을 얻어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창업한 동료들은 지금 다 퇴직을 했지만, 주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발전할수록 그들도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죠."

그는 자신의 주식이 2%밖에 안 된다고 하면 많은 기업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들 내가 레노버를 창업했고 회사가 이만큼 커졌으니 재산도 많을 것이라 믿죠. 하지만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조직을 단합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 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을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지난 2005년 당시 41세의 양위안칭(楊元慶)에게 레노버 회장 자리를 넘겨줬다.

―왜 레노버 경영에서 손을 뗐습니까?

"IT 는 젊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단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더 잘 하죠. 우리는 골프나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레노버 미국 본사는 1년에 세번 정도 갑니다. 레노버의 주요 문제 결정에 대해서는 이사로서 의견을 내는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물론 경영과 관련한 보고는 수시로 받죠."

그는 요즘 골프에 푹 빠져 있다. 여름철에는 거의 매일 오전 7시에 집 근처 골프장에서 9홀을 돌고 출근한다. 출근하면 대략 10시 정도가 된다. "최근 들어 저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고 있어요. 전문경영인이 있잖아요."

1984 년 레노버를 창업한 류촨즈는 이듬해 IBM의 대리점 모임에 참석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낡은 양복을 입고 뒷줄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얼마 뒤 IBM 컴퓨터의 중국 내 판매 대행에 나서게 된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 날 IBM PC 사업부를 인수할 줄이야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죠.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 러나 2004년 그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레노버가 IBM의 PC사업부문을 통째로 인수했다. 현재 레노버 회장인 양위안칭(楊元慶) 당시 사장이 밀어붙인 일이고 다른 이사들은 거의 전부 반대했지만, 류촨즈는 양위안칭의 판단력을 믿었다.

레노버는 2010년까지 IBM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올해부터 IBM 브랜드를 떼기로 결정했다. 자신감의 표시인 셈이다.

레 노버는 요즘 애플(Apple)과 슬림 노트북을 놓고 한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이 지난 1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맥북에어'를 발표하자 레노버는 '씽크패드 X300'을 내놓았다. 무게에선 0.03㎏라는 근소한 차이로 레노버의 X300이 앞섰지만, 두께는 맥북에어에 상당히 뒤졌다 (X300이 1.85~2.34㎝인 반면 맥북에어는 0.41~1.93㎝이다).

류촨즈 회장의 확장욕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레노버는 네덜란드 PC업체인 패커드 벨 인수에 나섰다가 경쟁 회사의 견제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M&A는 필요한 수단이며 레노버뿐 아니라 어느 기업도 해야 하는 것"이라며 "레노버는 주로 PC 부문 (M&A)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단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1996~1997년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과 홍콩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일을 했죠. 그때 책상머리에 새겨둔 글자가 '勿躁(우짜오·조급하지 말자)'였습니다. 회사 상황이 좋아지고 나서는 더 큰 일을 하려면 '弘毅(훙이·뜻이 넓고 굳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긴 목표를 세워 끝까지 견지해야 된다는 뜻이죠." 弘毅라는 말은 지금 그의 사무실에 큰 액자로 걸려 있다.

―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 우선 목표를 잘 세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명확한 목표를요. 미래의 큰 그림을 그려야 회사 구성원을 이끌고 앞으로 나갈 수 있죠. 두번째는 도덕성과 품성을 갖춰야 합니다. 세번째는 감성(感性)입니다. 큰 가슴으로 사람들을 포용해야 사람들이 단결하고, 서로 소통을 합니다. 물론 지적 능력도 필요해요. 리더는 학습 능력이 좋아야 합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자신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잘하는 점이 몇 가지 있다고 했다. "처음 10명과 회사를 세웠는데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한 만큼 나눠줄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응집시키려면 내가 솔선수범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는 많이 일하면서도 덜 가져갔어요. 그랬더니 구성원들이 잘 따라왔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이런 점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저는 회사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뒀어요. 그리고 기업을 하면서 여지껏 파벌을 만들어서 끌어올리고 한 적이 없어요. 파벌이 없으니 '누구 사람'이란 게 없었죠."

그가 남들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또 한 가지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아주 중시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레노버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제1의 원동력 역시 인재를 중시했다는 점을 꼽았다.

" 조그마한 회사에서는 일하는 게, 큰 회사에서는 사람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을 할 때마다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레노버가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일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인재들이 나왔기 때문인데 이는 '감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실적을 모두 나 자신의 공으로 돌리거나, 모든 권력을 내가 행사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습니다."

― 인재 양성 방법이 무엇입니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그리고 업무를 명확히 하고, 책임과 권한, 나중에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을 명확히 합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그들의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엔진 문화'라고 부르는데, 간부는 큰 엔진이고, 그 밖의 모든 직원들은 큰 엔진과 함께 돌아가는 작은 엔진이 되어야 합니다. 밑의 직원들이 엔진에 따라 움직이는 기어가 되어서는 안 되죠. 이렇게 해야 원동력이 더 커집니다."

― 지금까지 수많은 사업에서 성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 무엇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것이죠. 문화대혁명 때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죠. 두번째는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늘 노력한 것입니다. 목표를 높게 세워야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늘 공부한 것입니다. 책에 나온 지식뿐 만이 아닙니다. 외국 회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 회사들의 중국 주재원들은 좋은 스승이었죠."

그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덩샤오핑(鄧小平)을 꼽았다. "그가 없었다면 개혁·개방이 없었을 것이고, 중국은 아주 가난했겠죠. 그리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는 "중국의 개혁·개방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북한에 가보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에 가보면 아마 크게 놀랄 거에요. 어쩌면 이렇게 가난할까 하고 말이죠. '김일성'이라 부르면 안되고 꼭 '김일성 주석'이라고 부르고, 또 '김정일 장군'이라고 불러야 하니 얼마나 불편할까요."

'류촨즈 식(式)' 경영을 이야기할 때 그가 주창한 '나무통(木桶) 이론'과 '손가락(一個指頭) 이론'을 빠뜨릴 수 없다. 나무통 이론은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이어 붙인 나무통의 경우 가장 약한 나무조각에서 물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기업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다. 기업이 잘되고 못되고는 가장 약한 부분에 달렸다는 것이다. 또 손가락이론은 가운데 손가락(중지)처럼 길어야 남을 찌를 수 있는 것처럼 핵심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기업이 가장 약한 부분을 보완한 다음에는 핵심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 기업들이 너도나도 벤치마킹하는 경영 이론이 됐다.

― IBM을 인수한다는 일견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간단합니다. 중국 시장이 이만한 크기로 성장했는데, 이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해 세계적인 명품이 돼야 이익을 높이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실력이 있는 기업은 반드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삼성, LG처럼 말이죠."

그 는 IBM을 인수할 때 3가지의 리스크가 있었다고 했다. 첫째는 레노버가 IBM을 인수한 뒤에도 소비자들이 계속 제품을 살 것이냐는 것이다. 둘째는 IBM의 엘리트 직원들이 계속 회사에 남아 있을까 하는 문제다. 세 번째는 중국과 외국 직원들의 문화 차이를 해결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지금 해결하고 있는 중인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레노버의 실적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레노버는 일찍부터 서구식 경영 기법을 도입해 다른 중국 기업과 구별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박사는 "레노버가 IBM PC부문을 인수하기 전 레노버 본사를 방문했을 때 홍보나 관리 파트 등 여러 면에서 서구식 시스템을 받아들인 한국 대기업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류촨즈 회장은 "외국 선진기업의 노하우와 해외 경영 교과서에 나온 원리를 참고해 우리 실정과 결합해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외국 회사들은 메뉴에 따라 음식을 잘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늘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맞는 메뉴를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의 인사 스타일은 서구의 첨단 기업 못지 않게 파격적이다. 철저히 성과와 능력 중심이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의 경우 입사 5년 차이던 29세 때 핵심사업인 컴퓨터 사업본부장으로 발탁했고, 2001년에 사장, 2005년엔 회장으로 고속 승진시켰다.

류촨즈 회장은 비즈니스는 3개의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고 했다. '建班子(젠반쯔·핵심적인 관리팀을 세우는 것)', '定戰略(딩잔뤼에·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것)', '帶隊伍(다이두이우·직원들을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우는 것)'가 그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 경영의 처음부터 끝이죠."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덩샤오핑과 함께 아버지를 꼽는다. 조종사 시험에 낙방한 그에게 아버지는 "네가 정직하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격려했다. 그는 이 말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산다고 했다. "중국말에 '生財有道(성차이여우다오·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신용을 지켜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껏 회사를 운영하면서 늘 이 말을 지켜 왔습니다. 이는 레노버를 경영하는데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 됐습니다."

― 조종사가 아닌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 기업인으로서 과학기술의 성과로 돈을 벌고 사회에 생산 이익을 가져다 줘 보다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관리에 능하다고 생각하며 기업을 하면서 이런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종사가 안 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종사가 안 된 게 다행입니다. 나중에 검진을 통해 알게 된 일이지만, 저는 수면 장애가 있어 아마 좋은 조종사가 못됐을 거에요. (웃음)"

― 많은 창업자들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갔다가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곤 했습니다. 그럴 생각이 없나요?

"(단 호하게) 아니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회사의 핵심 관리층을 양성해서 그들을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더 좋은 실적을 내려고 하겠죠. 레노버는 '가족이 없는 가족회사'가 돼야 합니다. 가족들이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개인의 재산처럼 되기 쉽습니다. 또 경영권을 가족에게만 넘겨주면 다른 능력 있는 인재를 잃기 쉽습니다. 레노버는 이런 기업이 돼서는 안 됩니다. 직원들이 모두 한 가족이 돼 단합해야 됩니다."

그는 요즘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쓴 회고록에 푹 빠져 있다. 책을 보고 나서 10권을 사서 정부 인사들과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줬다고 했다.

그 는 이 책에서 두 가지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 한 국가가 빈부 격차 등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성장에 집중을 해 경제 발전을 이룩한 다음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퓰리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인위적으로 평등하게 하려고 하다 보면 아르헨티나·페루와 같은 길을 걷고,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게 됩니다.

둘째, 시장 원리로 경제를 관리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미국 닉슨 시대에 물가가 상승하자 어떤 품목은 값을 올리면 안 된다는 식의 행정적인 수단으로 간섭을 했는데, 실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국가는 사람처럼 하나의 체계로 돼 있어서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만 보고, 다리가 아프다고 다리만 고쳐서는 안 되겠죠."

그는 일하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회의 준비에 쓴다고 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최고위층 임원 회의를 열어 미래 전략을 중점적으로 논의한다. 또 레전드홀딩스 계열 2개 투자회사의 이사장으로 이들 회사가 10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할 경우 결정에 참여한다. 또 레노버의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응접실 옆의 집무실 창가에 있는 황소 조각상을 가리켰다. 조각상 아래에 '쉬스(蓄勢·힘을 모은다는 뜻)'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뿔 달린 황소는 힘차게 일어설 때를 대비해서 기운을 모으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의 레노버가 그러고 있듯이." 그가 가슴 속에 또 어떤 넓고 굳센 꿈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류촨즈 회장은

조종사가 꿈이었던 중국 IT 업계의 대부…1984년 20만위안 갖고 회사 설립

중국 IT 업계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류촨즈 회장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와 냉정함,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44년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은행원이어서 집안 살림은 넉넉한 편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그의 가족은 베이징으로 이사를 갔다.

어 렸을 때 꿈은 조종사였다. 당시로서는 선망의 직종이었다. 196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는 조종사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그의 외삼촌이 '우파'였다는 이유로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는 진로를 바꿔 시안(西安)의 군사전자기술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주로 레이더에 대해 배웠고, 컴퓨터의 길에 가까워졌다. 이 때 경험은 그가 이후 컴퓨터 사업을 하는 데 기초가 됐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자 그는 광둥(廣東)성과 후난(湖南)성 일대 농촌 지역에서 노역을 하게 된다. 당시 지식인들은 농촌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는 1970년 베이징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에 배치돼 컴퓨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적인 냉전(冷戰) 분위기 때문에 각국은 무기 개발에 힘을 쓰면서 컴퓨터 기술 개발 역시 서둘렀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4 년 그는 동료 연구원 10명과 함께 중국과학원이 지원해준 창업자금 20만 위안으로 작은 컴퓨터 회사를 차렸다. 바로 레노버이다. 이 회사는 설립 이듬해인 1985년 300만 위안, 1986년 1800만 위안, 1987년 70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리며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는 "첨단 IT 기술만이 중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 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는 "1987년 300만 위안을 사기 당했을 때가 경영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300만 위안을 홍콩달러로 바꿨는데 선전(深)의 한 무역회사 사람이 사기를 치고 도망을 쳤다. 일주일 만에 돈을 찾기는 했지만, 너무도 신경을 많이 쓴 나머지 밤마다 악몽 때문에 잠에서 깨고, 심장이 밤새도록 쿵쾅쿵쾅 뛰어 잠을 자지 못했다. 두 달 동안 입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1990년대 중국 정부의 관세 인하 조치로 컴팩·델·IBM 등 미국산 컴퓨터가 물밀듯 밀려 들어오면서 그는 다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중국어를 입력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고, '컴맹'이 많았던 중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버튼 하나로 인터넷과 바로 연결이 되는 실용 컴퓨터 등을 내놓으면서 고비를 넘겼다.

류촨즈 회장은 현재 레전드홀딩스 회장 직을 맡고 있다. 레전드홀딩스는 지주회사로, 그 밑에 주력사인 PC제조업체 레노버를 비롯해 부동산 투자 회사(레이콤부동산개발), 투자 전문 회사(호니캐피탈) 등 5개의 자회사가 있다. 레전드홀딩스는 중국 국가 기관인 중국과학원이 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부가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민영기업으로 간주된다. 레노버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으며, 지분 46%를 레전드홀딩스가 갖고 있다. 그는 주력사인 레노버 회장 자리를 2005년 양위안칭(楊元慶·44) 회장에게 물려주고, 그룹 차원의 신사업 구상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