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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tory/review

아직 피어있습니까? 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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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정하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끈질긴 감성으로 사랑을 만들어내어 주길 바라는 이정하씨의 글들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들로 채워져 있다. 애뜻한 사랑에 대하여 아주 솔직하며 정확하게 짚어내는 글모양새를 가진 작가이다.

오랜만에 다시 그의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꾸미지 않고 정확하고 간결하게 사랑시를 전하는 그의 스타일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다.
그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성을 애써 굳이 느끼려하지 않고도 가슴언저리를 꼭 집어서 낼 줄 아는 작가이다. 이동수 화백의 그림을 입힌 "아직 피어있습니까? 그 기억..."이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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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조각을 떼어 내는것과 다름없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떼어낸 마음 한조각을 전해준 사람이 생각난다.

*****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그대 굳이 아는척 하지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우리 사는 동안에 *****

그대가 떠나야 한다길래 난 미리 아파 했읍니다.
막상 그대가 떠나고 나면 한꺼번에 아픔이 닥칠 것 같아
               
난 미리부터 아픔에 대비 했읍니다.         
미리 아파 했으므로 정작 그 순간은 덜할 줄 알았읍니다.

또한 그대가 잊으시라시면 난 그냥 허허 웃으며 돌아서려 했습니다.
그대가 떠나고 난 뒤의 가슴 허전함도 얼중에도 그대를 생각했읍니다.
               
내 가슴이 이런데 당신의 가슴이야 오죽 하겠읍니까.
               
슬픔을 슬픔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며
아픔을 아픔이라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저 행복했다고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맑은 눈물 한점 보이고 떠나간 그대

아아~ 그대는 그대로 노을이었읍니다.
내세에서나 만날 수 있는 노을이었읍니다.


*****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부치지 못한 다섯 개의 엽서 *****


하나.
내 마음 속 서랍에는 쓰다가 만 편지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대에게 내 마음을 전하려고 써 내려가다가
다시 읽어 보고는 더 이상 쓰지 못한 편지.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조각을 떼어 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는지요?
밤이면 밤마다 떼어 내느라
온통 상처 투성이가 되고 마는 내 마음을.

둘.
아침부터 소슬히 비가 내렸습니다.
내리는 비는 반갑지만 내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고여 듭니다.
정말 이럴 때 가까이 있었더라면
따뜻한 커피라도 함께할 수 있을 텐데...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텐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듯 쓸쓸한 일인가 봅니다.

셋.
다른 사람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그대를 우연히 보았던 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미소 지었습니다.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아무런 원망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몇 걸음 더 떨어져 그대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팔짱을 낀 채 근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내겐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웃는 그대의 모습을
카페 창 너머로 훔쳐 보는 것이 내겐 또 더없이 큰 슬픔이었습니다.
아아, 그대는 꿈에도 몰랐겠지요.
그날 밤은 내게 있어 가장 춥고 외로운 밤이었다는 것을.

넷.
그렇습니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입니다.
그대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일이구요.
그러니 그대가 마음 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혼자 그리워하다 나 혼자 괴로워하면 그만,
그대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덤덤해도 괜찮습니다.
애초에 짐이 될 생각이 있었다면
나는 내 사랑을 그대에게 슬며시 들킬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대여, 나로 인해 그대가 짐스러워 한다면
그 자체가 내게는 더한 괴로움이기에
나 혼자만 그대를 사랑하고,
나 혼자만 괴로워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는 그저 모른 척하십시요.
그저 전처럼 무덤덤하십시오.

다섯.
나는 이제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하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랑하다 그 사랑이 다해 버리기보다,
한꺼번에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이 다해 버리기보다,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해
오래도록 그대를 내 안에 두고 싶습니다.
아껴 가며 읽는 책, 아껴 가며 듣는 음악처럼
조금씩만 그대를 끄집어내기로 하였습니다.
내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인 그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지워지지만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길 간절히 원하기에.

작가소개....
성명... 이정하(62년생)
출생지... 대구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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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판매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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